좋은 커피를 찾아 오지로 떠나는 여정은 여유롭거나,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과,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 뜻 밖의 좋은 커피를 만나는 행운이 있기에…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가방을 꾸립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 먼 여정의 기록들을 남깁니다.

아, 이르가체페 - 부제 : 왜 그다지도 가난한가

진실의 신이시여. 하늘과 땅의 신이시여. 아름다운 이 땅의 모든 것을 만드신 조물주여. 우리 농부들이 이 땅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의 삶을 바꾸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더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의 문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소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소서.

- 에티오피아 커피 재배 농부들의 기도. (Film ‘Black Gold’ 中에서)
커피 순례자

커피의 귀부인을 알현하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애당초 쉬운 길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의 순례자처럼 애써 편한 여정을 외면했을 지도 모른다. 순례객들이 산티아고로 가는 편리한 교통편을 몰라 그 고생을 하겠는가. 에티오피아 남쪽 지방으로 향하는 길 내내 사륜 구동 차의 짐칸에 짐짝처럼 구겨진 채, 안으로 들어오는 뿌연 흙먼지와 검은 매연에 마른 기침을 뱉어야 했다. 비포장길의 거친 노면과 갑자기 출몰하는 가축들로 차는 심하게 흔들렸고, 그런 흔들림으로 잠깐 눈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아침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한 차는 그렇게 하루 종일 달려 날이 어둑해진 후에야 겨우 목적지, 이르가체페(Yirgacheffe, 예가체프)에 도착했다.

이르가체페로 가는 길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이어지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Great Rift Valley)의 고원을 따라 남쪽으로 대여섯 시간 울퉁불퉁한 포장도로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길을 번갈아 달리다 보면 이르가체페가 있는 게데오(Gedeo)의 관문이자 이 지방의 제일 큰 도시인 딜라(Dilla) 타운에 도착한다. 이 곳을 관통하여 다시 2~3시간 가량 비포장 길을 달리면 조그마한 이르가체페 읍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커피의 중간 집산지인 딜라나, 이르가체페의 작은 읍내에서도 여기가 세계적인 커피 생산지 임을 알리는 작은 비석이나, 조형물, 플래카드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산비탈 저 멀리로 문득문득 보이는 커피 가공 처리시설 (Preparation Station)이 이 곳이 커피산지임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게 해줄 뿐. 길거리는 지나온 여느 에티오피아의 풍경과 다름없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과 우마차, 염소와 양, 소떼, 당나귀들과 무엇을 파는지 알기 힘든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이어지고, 커피와 관련된 어떤 단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르가체페 커피는 이 지역의 가장 북쪽인 딜라에서부터 재배된다. 딜라 주리아(Dilla Zuria), 웨나고(Wenago), 이르가체페(Yirgacheffe), 코체레(Kochere), 게데브(Gedeb)에 이르기까지 1백개 이상의 협동조합과 개인이 운영하는 스테이션들이 산언덕빼기 경사면에 듬성듬성 흩어져 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디도(Edido), 콩가(Konga), 하푸사(Hafursa), 코케(Koke), 워카(Worka), 아리차(Aricha) 등의 마을과 협동조합 스테이션(Wet Mills)들도 바로 이 곳 이르가체페 커피 산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튿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가 재배되고 가공되는 농장으로 향했다. 커피를 만나기 위해서는 평탄한 길에서 차를 돌려 구불구불한 좁은 산길을 한참 동안 오르내려야 한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대부분 바나나 등의 그늘 나무(Shade Tree) 아래에서 재배되는 방식으로 생산된다(Shade Grown). 숲의 그늘이 커피나무를 덮어주고, 숲과 커피나무가 어우러져 공존하는 시스템이다. 커피 경작지 자체가 숲이고, 숲 속에서 생태계 순환을 이루기 때문에 비료도 농약도 필요 없다. 아울러, 일찍이 농민들이 정부로부터 불하 받은 숲 속의 작은 텃밭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있어 눈에 보이는 밭의 경계도 없다. 숲이 농장이고, 농장이 숲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물과 덤불조차 구별 못하는 먼 이방인의 눈에 보인 형태이고, 실제로 커피를 재배하는 차원에서는 좀 더 세분화된다. 우선 야생 상태 그대로 수확하는 산림 커피(Forest, 10%)가 있고, 숲의 밀집도가 조금 낮지만 커피나무를 관리해서 생산하는 반 산림 커피(Semi-forest, 35%), 그리고 일반적인 소농들이 뿌리 또는 향료작물과 함께 재배하는 정원 커피(Garden, 50%) 등으로 구분된다. 이웃나라 케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플랜테이션(Plantation, 5%) 농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차에서 내려 커피 체리가 매달린 숲 속을 헤치고 들어간다. 현지인의 구분으로 본다면 반 산림 커피 정도 되는 듯 하다. 본격적인 수확기에 접어든 에티오피아 변종 커피나무(Ethiopian Heirloom varieties)의 줄기에는 온통 붉게 익은 열매로 가득하다. 그렇게 커피의 귀부인 이르가체페의 커피 체리를 만나는 순간, 멀리 이 곳까지 고생스럽게 달려온 보람이 새삼스럽다.

커피와 인간

커피와 사람은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 우연한 가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답을 두고 꿰 맞춘 억지소리일 수도 있지만(그래서 과학적 인과성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인문학적으로 그럴싸하게 우겨볼 소지는 다분하다. 우선, 인류와 커피의 기원이 같다. 커피의 기원은 잘 알려진 대로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Abyssinia) 고원이다. 이 곳의 칼디(Kaldi)라는 이름의 염소 목동이 야생 커피를 발견하고, 이 열매가 수도승들에게 전달되어 최초의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칼디의 전설. 물론 희랍의 수사(修辭)나, 누군가 지어낸 얘깃거리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유전자 구조를 추적하는 등의 일련의 탐구로 에티오피아 고원지역이 야생 커피의 기원지로 밝혀진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인류의 기원도 여러 주장이 분분하지만, 에티오피아 하다르(Hadar) 고원 지역에서 발견된 320만 년 전 인류 최초의 어머니 루시(Lucy)를 가장 의미 있는

증거로 여긴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침팬지와 뚜렷이 차이를 구분 지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인류의 기원이라는 것. 물론 커피와 인간, 두 가지 기원의 인과성은 없다. 하지만 왜 하필 에티오피아의 고원 지대인가. 두 번째억지 논리는 수명이다.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커피나무가 사람만큼 산다고 말한다. 커피나무의 수명은 50년 정도다. 커피나무가 실제 열매를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은 20~30년이고, 더 이상 열매가 맺지 않는 노목은 잘라버리기 때문에 정확한 기대수령을 알기 어렵다. 물론 100년이 넘는 수령을 가진 커피나무들도 있어 보호되기도 하지만, 대개의 자연 상태의 커피나무(forest coffee)는 50년가량 살면 고사한다. 인간의 수명은? 지금은 보건 의료환경이 개선되어 좀 더 늘어났을 지 모르지만, 2011년 기준으로 에티오피아 국민들의 기대수명은 53세 정도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커피나무만큼 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서식 환경은 어떨까. 아라비카 커피는 인간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기후환경에서 자란다. 열대지방의 고산지대. 사시사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비가 자주 내리지만 습하지 않고, 눈부신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지상낙원의 기후. 그 곳에서 커피가 자란다. 아라비카 중에서도 산미가 곱고 향이 뛰어난 스페셜티 커피가 재배되는 하이랜드의 기후조건은 더욱 까다롭다. 가장 따뜻한 달의 최고 기온이 25도 수준이고, 가장 추운 달의 온도가 13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계절별 온도 변화가 적고, 우기, 건기 등 날씨 환경이 규칙적이어야 한다. 커피의 중독성은 이런 최적의 자연이 만들어낸 부산물이 아닐까?

무엇보다 커피는 사람의 복잡한 미각에 가장 충실한 음료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라비카 커피는 단맛, 신맛, 쓴맛, 그리고 제5의 미각이라 불리는 감칠맛(우마미)까지 갖고 있다. 그런 복합적인 향미로 인해 차(茶)와 더불어 온 지구적 사랑을 받는다. 아울러 산업적 이해에 따라 나뉘기도 하지만, 대체로 커피 그 자체로는 사람의 몸에 이로운 음료라는 주장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커피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식물이자, 작물이다. 비록 생산과 소비지역이 나뉘고, 가장 불공정한 거래 품목이면서 농업에서 제조업, 서비스에 이르는 복합적인 산업적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커피를 찬미했듯 사람에게 커피는 가장 가까우면서 사랑을 받는 신과 자연이 내려준 선물이다. “Bunnaafi Nagaa hindhabinaa” (분나아피 나가아 힌드하비나아, May Coffee and Peace be with you. 에티오피아 암허릭어)

아, 이르가체페

산업적으로 커피시장의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은 지구온난화다. 이미 기상이변으로 냉해와 가뭄, 홍수 등으로 지역에 따라 매해 적지 않은 생산량의 진폭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의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2080년즘 에티오피아 커피 재배지의 약 85%가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건기의 기온이 높아지고, 우기의 강수량이 감소하는 등 기후 환경이 변화하면 커피재배에 적합한 지역이 줄어들면서 커피 생산량이 감소하고, 결국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지금보다 훨씬 값비싼 음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커피를 생산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 나라의 농부들에게 지금 당장의 가장 큰 위협은 가격 변동이다. 에티오피아 인구의 15%인 약 1천6백만명이 커피를 생산하고 있으며(*2010년기준, JARC), 가공과 물류, 수출까지 포함하면 전체 에티오피아 인구의 25% 가량의 수입이 커피에 달려있다.(*2012년, OARDB) 커피는 매년 평균 7억6천만불어치가 해외로 판매되어 단일 품목으로 이 나라의 최대 수출품이며, 이는 에티오피아 전체 수출액의 약 1/3에 해당한다.( 브룬디는 2/3, 온두라스 1/4, 니카라과 1/5 정도의 수출 비중을 갖는다.)

이렇게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는 국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국민들의 건강 교육 인프라 및 기타 사회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의존하는 외환 수입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그래서 커피 가격이 떨어지면 커피 농가뿐 아니라, 국가 전체 경제가 위협을 받게 된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의존도가 지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는 이들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기본적인 수익원이 되질 못한다. 왜 그럴까? 커피나무와 야생 잡목이 어우러져있는 숲 속으로 좀 더 들어가다 보면 듬성듬성커피 재배 농가들과도 마주하게 된다. 대개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거나, 마른 풀로 지붕을 덮고, 흙으로 토벽을 쌓아 지은 움집들이다. 집은 비와 바람만 피할 수 있는 수준이고, 토굴처럼 좁고 어두컴컴한 실내는 먹고 잠자는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의심이 들만큼 열악하다. 집 앞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있으니, 금방 어디선가 나타난 동네 아이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모여든다. 옷은 더할 수 없이 꾀죄죄하고, 대개 맨발 아니면 슬리퍼를 끌고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달콤한

자스민 꽃향과 과일의 산미를 자랑하는 커피의 귀부인 이르가체페, 그 이름만큼이나 독특하고 우아한 커피의 향미에 이끌려 이 먼 곳까지 찾아왔는데, 여기서 마주한 이르가체페 사람들의 삶의 현실은 첫 눈에도 너무나 참담하다. 물론, 그들이 기본적인 생존, 생활권을 누리며 살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1인당 GDP 313불(2010년)로 니제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 1980년대 수 백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고, 지금도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며 각자 생존을 위해 고달프게 싸워가야 하는 이 나라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깊은 이르가체페 골짜기의 가난한 커피 재배 농가들의 삶의 현실을 눈 앞에 맞닥뜨리고 나서의 울컥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왜 그다지도 가난한가… 대학시절에 읽은 책의 제목만 머리에 떠오를 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왜 그다지도 가난한가 말이다.

그들과 나는 커피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자선이나 구호활동을 위해 이 곳에 온 것도 아니고, 별난 오지 탐험을 즐기는 여행자도 아니다. 그저 좋은 커피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것인데, 어느 순간 커피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사람에게 느끼는 막연한 연민과 왠지 모를 미안함. 그리고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를 아득한 기분이 뒤엉켜 아이들 앞에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다. 한참 지나 현지 가이드가 이동해야 한다며 큰소리로 부를 때까지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착잡한 기분에 자리를 일어설 수 없었다. 아늑한 카페에서 즐기던 그윽한 이르가체페 커피 한 잔에는 지구 반대편의 가난한 나라, 그리고 깊고 어두운 산골짜기에 나무집과 움집을 짓고 사는 커피 농가 사람들의 열악하고 고단한 삶이 녹아있었다. 마치 진주를 만드는 조개의 깊은 상처처럼... 아, 이르가체페!

왜 그다지도 가난한가

UN의 보고서에 따르면 구매력 지수가 1인당 하루 1.25달러 아래일 때를 극단적인 빈곤 상황으로 본다. 현재 8억 정도의 지구인이 이 계층에 속하는데, 이 중 약 5천만명~1억명의 인구는 커피 농장을 소유하고 있거나, 그 곳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으로써의 커피는 빈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등식을 이루는 셈이다. 왜 그렇게 가난할 수 밖에 없을까. 문득 커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농민들의 소득이 궁금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차마 물어보질 못했다. 이미 그들이 살고 있는 모습에서 충분히 짐작이 되는데 구체적으로 확인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부분의 에티오피아 소농들은 1ha 미만의 작은 땅뙈기에서 커피를 재배한다. 에티오피아의 정원 농장(Garden Farm)은 커피나무의 재배 밀도가 낮아 1ha의 밭에서 일년에 600 ~ 800kg의 커피를 생산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골드(Black Gold)에 나오는 농민들의 주장을 참조한다면 그들이 커피를 내다팔아 버는 소득은 kg당 8센트, 11센트, 23센트로 분분하지만, 57센트만 되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말한다.

그들의 바람대로 kg당 57센트의 가격에 판다고 넉넉하게 가정해보면 1ha의 땅을 가진 농부가 커피로 벌어들이는 연소득은 대충 340 ~ 460달러 정도다. 상상조차 힘든 적은 돈이다. 기본적인 생활, 다시 말해 깨끗한 물을 마시고, 굶지 않아도 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서는 kg당 1달러 10센트는 받아야 된다고 한다. 생산지의 커피가격은 왜 이렇게 낮은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국제 시세에 있다. 소비국가의 수요와 생산국가의 공급에 의해 국제 커피가격이 결정되는데, 생산지의 커피 공급 과잉이 지난 반세기 동안 커피 가격을 지속적으로 짓눌러온 것이다. 커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까지 꾸준히 오름세를 유지하다가 이후 생산과잉으로 가격이 내리기 시작했다. 1962년 남미의 커피 생산국들을 중심으로 가격유지를 위한 국제협정(ICA, International Coffee Agreement)을 체결하고, 이를 소비국까지 확대해 국제 커피시장의 안정을 꾀했지만, 1989년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하면서 커피 가격은 급락했다.

게다가 베트남에서는 1990년대 들어 저가의 로부스타 커피를 1,400%나 성장시키면서 순식간에 커피대국으로 성장했고, 세계 최대의 아라비카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도 같은 기간 두 배 이상 생산량을 늘리면서 2000년대 들어 커피의 국제시장 가격은 40년 전의 1/3 수준으로 떨어졌다. (*커피가격은 늘 유동적이다. 역사적 최저점을 기록했던 2001년에 파운드당 45센트(kg당 약 99센트)이던 국제커피 거래 시세는 2011년에는 309센트(kg당 681센트)로 급등한다. 현재는 105센트(kg당 229센트)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브라질과 베트남의 커피대국은 대형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기계로 커피체리를 수확하면서 생산효율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WTO 자유무역 시대에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에티오피아 소농들에게는 그런 대량생산 시스템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커피 가격이 생산비용 이하로 떨어지면 농가 가족들의 생계와, 의료비, 아이들의 학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결국 고리의 빚만 쌓이게 된다.

커피의 공급사슬은 공급 과잉의 문제만큼은 아니더라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커피가 재배 농민의 손에서 최종 소비자까지 도달하는 데는 십여 차례 복잡한 손바꿈을 거친다. (*물론,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커피 공급사슬에 들어있는 참여자들은 재배농민, 가공시설(워싱 스테이션), 수매업체(중간상인), 영농조합, 도정공장(dry mill), 커피 거래소 시장, 수출업체, 메이저 곡물회사, 수입업체, 로스팅 업체(제조업체), 카페(또는 대형마트나 소매시장), 최종 소비자 등이다.) 다국적 기업인 ECOM, Louis Dreyfus, Neumann, VOLCAFE 등의 4대 메이저 곡물회사가 전 세게 커피 거래의 40%에 관여한다. 여기에 Starbucks와 P&G (Folgers), Kraft General Foods (Maxwell House), Nestles 등의 거대 커피기업들까지 가세하면 엄청난 규모의 커피 거래가 소수 다국적 기업들의 손에 움직이게 된다. 이들이 커피 수급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격이다. 대기업 구매부

서의 미션이자 목표는 얼마나 낮은 가격에 커피원료(생두)를 사들여 원가를 낮추고, 이익을 극대화하여 주주들의 이해에 부합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그들은 매일 뉴욕 선물거래(ICE) 시장의 시세표를 주시하고, 이를 토대로 ECX (Ethiopia Commodity Exchange)와 같은 국가별 상품거래소 시장에서 대량으로 커피 원두를 사들인다. 지난 수 년처럼 국제 커피 가격이 안정하향세를 이어가면 이들 소수 글로벌 기업들의 이익과 그에 비례한 주식가치 및 투자자들의 배당금은 늘어난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난 이익은 결코 산지의 농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다른 곡물도 마찬가지지만, 커피도 원료 자체로는 부가가치가 매우 낮다. 대부분의 커피 생산국은 저개발국가, 아니면 개발도상국들이고, 글로벌 환경의 시장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커피 브랜드는 커피 소비국으로 구분되는 선진국의 기업들이다. (* 전 세계 커피의 30% 정도만 커피 생산국가에서 소비된다. 품질 면에서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커피들이다.) 물론, 에티오피아와 같은 커피 생산국에서도 생두를 가공하여 상품화를 하지만, 에티오피아로부터 로스팅한 커피, 또는 소매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완제품으로 수입하는 외국기업은 거의 없다. 농업으로써의 커피의 부가가치는 제조업 또는 서비스업 차원의 커피에 비해 턱없이 낮다. 반대로 농업 단계에서의 커피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한마디로 부가가치가 낮은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역사상 최저점을 기록했던 1994년부터 10년동안 커피 원두(생두)는 같은 기간 유럽이나, 북미의 카페에서 판매되는 커피 가격의 1~3% 수준이었으며,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로스팅한 원두커피 가격의

2~6%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보면 그 정도의 소매 가격이 책정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점은 농업으로써의 커피의 부가가치가 선진국 중심의 제조업, 서비스업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점이다. 게다가 부가가치가 낮은 데 반해 리스크는 높다. 기본적으로 낮은 수매가격 외에도 가뭄이나 홍수, 냉해로 인한 자연재해나, 커피 녹병 등 병충해의 불가역적인 외생 변수는 에티오피아 커피 산업과 농민들에게는 그대로 재앙이 된다. 국내에서 재배되어 소비되는 농작물의 경우 자연재해로 인한 공급부족은 가격이 인상되면서 어느 정도 완충이 된다. 하지만, 커피처럼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농산물의 경우 글로벌 커피사슬의 총 공급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급감하더라도 이를 상쇄시킬 만큼 커피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세계 6위의 커피 생산국가이지만, 글로벌 커피 공급량의 약 4%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낮은 커피 가격 자체도 문제지만, 다양한 요인에 의해 춤추듯 흔들리는 커피시세의 변화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1차 농업의 범주로 분류되는 커피의 시세는 그 해 작황이나, 가뭄 등 기후변화, 또는 병충해 등 다양한 변수로 가격이 흔들린다. 아울러 이런 생산환경 및 생산 그 자체의 변화뿐 아니라, 일부 투기자본이나 큰 손들이 뉴욕 상품거래소(ICE) 시장을 움직이는 인위적인 요인에도 가격은 큰 폭으로 오르내린다. (뉴욕상품거래소 시장에서는 투기적 수요에 의해 실제 생산량의 10배까지도 거래되기도 한다.) 이렇듯 WTO 체제하에서의 에티오피아 커피 농가들은 자신들이 땀 흘려 농사를 지은 것과 상관없이 세계적인 가격 추세에 따라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이 결정된다.

예컨대, 베트남의 로부스타 농장이 늘어나고, 과테말라에서 커피 잎마름병이 유행하는가 하면, 브라질에서 새로운 비료가 개발되어 생산량이 증가하는 등 다른 나라에서 발생된 요인들로 인해 그들의 손에 쥐는 수익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커피 농가뿐 아니라, 에티오피아나 브룬디처럼 커피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농업 국가들의 경우 전체 국가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심의 선진국 커피 기업들은 국제 커피 가격이 하락하면 원가 하락에 따른 이익이 늘어난다. 또한, 2011년처럼 국제 커피 시세가 오르면 이를 구실로 커피 소매 판매가격을 인상해서 리스크를 줄인다. 커피 소비자들이 국제 원유 시세에 따라 연동되는 자동차 기름값만큼 국제 커피 시세와 관련해 커피값에 민감하지 않는 것이 커피 소매 기업들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심지어 최근 국내의 유명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는 지난 수 년간 국제 커피 시세가 안정적으로 하향세를 이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커피 원두가격과 근로자 임금 인상을 매장의 커피 판매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내걸고 있음은 아연실색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솔루션

솔직히 에티오피아 커피 농가의 현실에 대한 당장의 해답을 구하기는 어렵다. 이 문제가 국제 무역질서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유통 구조, 그리고 경제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는 각 국의 이해관계까지 엮인 거대 담론이라 해결방안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혹자들은 공정무역이나, 새로운 무역협정 등을 대안으로 내놓지만, WTO 자유무역 질서가 완전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되지 않는 이상, 아니면 엄청난 기후 변화가 몰아 닥쳐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이 급감하지 않는 한 극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럼 혁명적인 큰 물결이 도래할 때까지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마존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일과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이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는 없을까? 공정무역(Fairtrade)은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직 그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일부 선진국의 양심적인 로스터들과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공정무역에 참여하고 있다. 착하고 바람직한 활동이다. 그러나 커피 공급사슬에 속해있는 특정 이해관계자의 양보를 전제로 한 대가, 또는 캠페인 차원의 자선운동은 분명 한계가 있다. 조건 없이 최저 가격을 보장하라는 것은 공정거래를 이유로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다국적 기업 또는 대기업들이 공정무역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공정무역 제품이 전체 기업 구조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거나, 인증 라벨을 위해 1~2%의 제품에만 받는 것은 실제로는 도덕적이지 않으면서 윤리적 메시지의 이점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다국적 기업 또는 대기업들이 공정무역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공정무역 제품이 전체 기업 구조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거나, 인증 라벨을 위해 1~2%의 제품에만 받는 것은 실제로는 도덕적이지 않으면서 윤리적 메시지의 이점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은 공정무역 인증 라벨이 아니라, 좋은 커피에 대해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합리적인 거래시스템을 복원하는 데 있다. 생산국의 커피 농민이나, 조합, 가공업체들은 최고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는 데 집중한다. 소비국의 로스터는 여러 미들맨들을 거치지 않고, 이들과의 직접 거래를 통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대신, 유통단계의 이익을 최소화 하면 된다. 뉴욕과 아디스아바바의 상품거래소 시장 가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스페셜티 커피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커피 문화를 확산시킴은 물론, 생산국 농민들에게는 좀 더 양질의 커피를 생산하도록 자극하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 농민과 국내 소비자 사이에는 2, 3단계의 중간 매개만 있으면 충분하다. 상품거래소 시장이나, 글로벌 메이저, 대형 유통업체를 통할 필요가 없다. 산지의 농민이나, 조합은 소비국의 니즈를 잘 이해하여

좋은 품질의 커피를 양산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마도 그런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받는 것이 좀 더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모든 농민들이 결코 헐값에 상품거래소 시장에 내다 팔지는 않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된 커피인지 확인이 어려운 커피보다, 커피 산지의 이력이 분명하고, 한 잔의 커피가 어떻게 나와 만나게 됐는지에 좀 더 관심을 갖는다면 이런 작은 날갯짓이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들고, 결국에는 시장이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거대 담론을 무너뜨리는 물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스페셜티 커피 문화다. 다큐멘터리 필름‘블랙 골드(Black Gold)’에서 말라위의 무역부 장관(Minister for Trade)은 "우리는 원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역을 원한다"라고 말한다. 공정무역이 어느 정도 자선이나, 착한 소비 등의 도덕적 개념이 들어있다면, 스페셜티 커피 문화는 정당한 거래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에필로그

100% 커피 소비국인 우리나라에서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생산국의 빈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불공정한 게임의 당사자가 늑대의 입장에서 양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 소비자 없는 생산자는 있을 수 없고, 멀고 먼 두 집단을 잇기 위한 누군가의 역할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매개체의 역할이 합리성을 내세운 불합리한 거래시스템이 아니라, 소비자나 생산자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정당한 채널이라면 이런 말하기 거북한 얘기를 애써 들춰내는 것도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누구라도 이르가체페로 가서 가난한 농부와 그의 가족들, 아이들의 삶과 노동의 현실을 본다면 이런 민감한 이슈에 대한 자기반성적 질문과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또한 그것이 연민이나 자선이 아니라, 공정하고 실천적인 거래에서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누구나 그 방법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심장 어느 구석엔가 체온만큼 따뜻한 측은지심의 본성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쓴이 : 최상기/ ㈜위트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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